아- 사랑하든 사람들
– 박용철, <떠나가는 배>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춘계산행! 전국적인 산불 피해로 인해 목적지가 고창에서 원주로 변경되고, 개인 사정으로 다수 인원이 불참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디데이는 다가왔고, 우리는 새로운 산을 찾아 떠났다. 난생 처음 해보는 장기 산행에 내심 설레였다. 그래서인지 출발 전날에 동방에 모여 짐을 싼 이후, 아닌 밤중에 매트리스 위에 담요를 펼쳐놓고 친 고스톱마저 흥미진진했다.


 분명 자주 보던 사람들인데 자연에선 뭔가 달라 보인다. 산악부 사람들은 산을 만나면 대체로 고기가 물을 만난 듯 활기가 넘친다. 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해우소인가보다. 속세의 온갖 근심 걱정 내려놓고 마음껏 산을 타는 모습이 좋다. 산은 조금 뒤쳐지거나 부족한 점이 있어도 묵묵히 기다려준다. 이리저리 갈팡질팡 하다가도 산에서는 그저 묵묵히 걷기만 해도 되니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인자요산이라더니 일리가 있네 ㅎㅎ


 치악산 종주 중 우연찮게 들렀던 상원사에서 보살님들이 손수 미역국에 밥을 말아주시고, 드립 커피를 내려 나눠 주셨다. 절 밑의 종에 얽힌 꿩과 구렁이에 관한 전설도 재미있게 들었다. 듣던 중 정윤이 왈, ‘그래서 꿩은 언제 나오죠?’ ㅋㅋ 우중산행에 지쳐가던 심신을 따뜻한 선방에서 적잖게 달랠 수 있었다. 재충전의 시간을 가진 후, 우리는 종점인 구룡사로 다시 출발했다. 보살님의 곳간에서 알뜰하게 털어온 각종 주전부리와 함께.


 종주를 마치고 하산하던 길, 산악부의 빛과 소금인 재호햄을 만났다. 먼 타지에서 동포를 만난 듯 찐하게 반가웠다. 고생하는 산악부 형제들을 위해 치킨에 과일까지 싸들고 먼 길 와주신 빛재호 찬양해~ 정말 당신이 있어 산(山)맛 납니다. 걸어다니는 시산제 인증. 중간에 민경이가 발목을 삐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다행히 전날 군마트에서 공수해 온 멘소래담으로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우리 모두 건강하게 안전산행 합시다.


 삼성산 이후 간만에 하는 자연암벽 등반인데,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가보다. 재호님 추천으로 아무 생각 없이 눈앞의 코스에 붙었는데, 아뿔싸, 그게 10b 난이도인 봄길이었다. 그걸 완등하고 내려와서 알았다. 하강할 때 느꼈다. ‘아, 여기 생각보다 높네?!’ 남심도 녹이는 여심바위의 봄길… 전날엔 비가 오더니 이날은 바람이 세더라. 텐트 채로 바람에 날아갈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펙이 뽑히고 후라이팬이 날아가길래 작은 바위로 뭉개두었다.


 이틀 간 씻지도 못하고 밤엔 추워서 벌벌 떨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왜냐면 등반이 재미있고 부대찌개가 맛있었기 때문에(바위가 친절하고 대장님이 맛있어요?!). 만사가 다 맘처럼 술술 풀리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지 어쩌겠는가. 양치하러 인근 화장실에 갔다가 홍현이가 클렌징 폼을 빌려줘서 영인이랑 같이 세안을 했는데 신세계였다. 마치 원시인이 불을 본 듯 우리는 신나게 세수를 하고 돌아오는 다리 위에서 얼굴에 로션을 투박하게 문질렀다.


 과연 산악부 사람들은 강하다. 밤에 삼겹살 10kg 와 밥을 냄비째로 3통 이상을 해치우고도 힘이 남아 야간에 등반을 한다. 어둠 속에서 헤드랜턴을 키고 절벽에 매달려있는 모습이 꼭 빛을 내는 반딧불 같다. 술기운에 노래를 흥얼거리며 다리 위에서 직관을 했다. 심야의 선선한 공기 속 이리저리 비춰지는 스포트라이트가 선명하게 바위의 결을 비추었다. 어쩌면 산은 잠들지 않고 산사람들을 지켜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마지막 날 오전, 우리는 야영지에서 등반구를 챙겨 간현암장으로 향했다. 삼성산 숨은암장과 여심바위에서도 못느꼈던 위압감을 처음 느꼈다. 진짜 바위산을 오르는 기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고인물들이 많더라. 지원이를 위시한 선등자들의 배려에 힘입어 신입부원들도 좌벽에서 탑노핑으로 등반 연습을 했다. 예진 님은 오르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게 거의 실사판 소닉이다. 담희 형은 실압근 + 재능충이신 것 같다. 홍현이의 리벤지에도 성공했다.


 원 팀, 원 액션! 산 앞에서는 시기도, 차별도, 걱정도 다 무의미하다. 청산에 살어리랏다~ 옛 문인들이 머리가 복잡할 때면 명승고적을 찾아 산수유람을 즐겼던 뜻을 알 만하다. 시산제를 다녀오며 어느 형님이 해주셨던 말씀처럼, 산에서는 배울 수 있는 것이 참 많다. 등산은 기본이고 등반, 야영에 역전! 야매요리까지 ㅎㅎ 캠핑에 로망이 있었던 본인에게는 이번 춘계 장기산행이 하나의 종합선물세트였다. 다들 무사히 복귀해줘서 감사하고 다음 산에서 보자~ ^^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 정현종,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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