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산은 구름과 같고 사명은 물과 같으니, 물은 흐르면 자취 남지만 구름 떠나면 흔적이 없네.

북적북적한 시산제를 다녀오니 제 마음도 덩달아 북적해지는 것 같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했던가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누구는 산이 거기 있기에 오른다고 하죠. 그 말도 맞는 것 같습니다. 산을 오르는 데 거창한 명분이나 설명은 딱히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냥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산을 오르면 그뿐이고, 그 과정에서 기쁨은 배가 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마침 산행 당일에는 날씨도 아주 좋았습니다. 우연찮게 환승 열차를 놓쳐 창동에서 15분을 기다렸지만 덕분에 열차 안에서 영인이를 만났고, 운좋게도 선크림을 얻어 발랐습니다. 전화위복이었습니다. 실수로 선크림을 많이 짜서 갸루상이 될 뻔한 건 전복위화였습니다. 영인이 말로는 역 앞에서 도봉산 봉우리가 보일 정도였답니다. 산 입구까지 15분 가량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걷다보니 어느덧 집합 장소인 목재 체험장에 도착했고, 산악부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입구에서 서로 통성명을 한 뒤 가볍게 몸을 풀고, 제사에 쓸 막걸리와 시루떡 등을 나눠 들었습니다. 거의 3~40명에 달하는 원정대였습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입산을 했습니다. 중간중간 산마루에서 형님들이 인근 산과 봉우리의 역사를 설명해 주시고, 초콜릿을 나눠 먹거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딱 제 동생 뻘인 영인이와 뒷줄에서 신나게 군대 얘기를 하며 열변을 토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면 제 동생이 이제 막 훈련소를 수료했거든요. 놀리는 재미가 있더라고 말입니다.

제사 장소에 도착해서 자리를 펴고 세팅을 한 뒤, 일동 묵념하며 먼저 가신 형제들을 추모하고, 제배를 하며 올 한해 산행의 안녕을 기원했습니다. 엄숙했지만 편안했습니다. 제사를 마치고 돗자리 주변에 둘러앉아 제사 음식과 각자 싸온 도시락을 나눠 먹으며 소풍 같은 분위기 속에서 즐겁게 식사를 마쳤습니다. 옆에 독일어과 친구 2명이 앉았는데, 독일어과가 그렇게 큰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무려 90명… 어문계열은 모두 소수 정예일 거라는 저의 편견을 깨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일전에 외국인 유학생 대상 비자 발급 및 취업 알선을 해주는 행정사에서 잠깐 근무한 적이 있는데, 허니 민도 비자 연장에 대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낯선 타지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유학생들에게 한국이 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템포를 살짝 올려 가다보니 정윤, 지원, 아인 무리에 슬쩍 붙게 됬는데, 아 이 친구들 입담이 굉장합니다. 걸음을 바삐 하면서도 사운드가 비질 않아요. 대충 아인이 연애상담을 해주는 내용이었던 것 같은데, 마치 고모들이 아끼는 조카에게 소개팅을 가장한 중매…를 주선해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의도치 않았지만 듣다 보니 상담의 디테일한 내용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자들의 수다란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좀 더 앞서 가니 형님 세 분과 주희, 혁준이가 있는 일행에 합류하게 됬습니다. 쭉쭉 가다 보니 어느새 다른 일행들과 멀어졌는데, 기억하기로는 아마 중간 갈림길에서 길이 엇갈렸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왼쪽으로, 우리는 오른쪽으로 온 거죠. 다시 교점으로 돌아가기에는 좀 멀어서, 낙장불입! 하고 그냥 그 길로 쭉 하산했습니다. 내려오면서 형한테 수원 공군기지가 f-5를 버리지 못하는 이유와 같은 재미있는 썰도 듣고, 공터에서 승구 형의 놀라운 유연성을 체감도 하며 설렁설렁 내려왔던 것 같습니다. 혁준이는 과 동기랑 인도에 가서 쪼리 신고 3만 보를 걸었다는데, 그 얘길 듣고 ‘이건 쪼리 말도 들어봐야 한다’고 했던 게 기억납니다.

길이 엇갈렸는데, 줄은 잘 섰던 것 같습니다. 다른 일행보다 거의 30분 빨리 내려왔거든요. 덕분에 형님들이 주시는 맥주 한잔에 김치도 한 젓가락 하고, 감자탕 뼈도 미리 한 두개 뜯었습니다. 선선이 쉬고 있으니 형제들이 하나 둘씩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얼핏 다 모이니 형님께서 건배사를 하시는데, 기분이 좋아서 진심으로 위하여! 를 외쳤던 것 같습니다. 집안 장손인 혁준이의 제사 썰도 듣고, 주희랑 wwe 프로레슬링에 대한 얘기도 나누고, e스포츠는 과연 스포츠인가에 대해 아인이의 개똥철학도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옆에 앉으신 형님께서 잔을 시기적절하게 채워주신 덕분에 금방 얼큰하게 취할 수 있었습니다.


회식이 파하고 헤어진 뒤, 동아리 방으로 2차를 갔습니다. 콜라와 과자 등 주전부리들을 사들고 캠퍼스로 가는데, 영인이가 시루떡 얘기를 하니까 할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어렸을 때 할머니 손에 자라서 시루떡을 많이 먹었거든요. 그리고 어김없이 이정윤이 영어를 남발하기 시작했습니다. 말하다가 뜬금없이 그럴 듯한 영어 단어를 발사하는데, 당황스러우면서도 웃깁니다. 듣는 이들의 마음 속에 묵직한 burden 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의외로 발음은 좋습니다. 오늘 초면인 독일어과 친구들도 합류했습니다.

동방에 자리를 마련하고 돌아가면서 소감을 얘기하는데, 누가 인생은 속도보단 방향이다라고 말했던 게 기억납니다. 일리가 있습니다. 방황을 참 많이 했는데, 이제야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제 차례가 와서, 개인적으로 참 힐링이 됬다고 했습니다. 사실 나이만 찼지 산악부는 처음이라 경험도 지식도 많이 부족한데 형 대접을 받아도 되나…? 하고 자격지심이 좀 있었는데, 노련하신 형님들과 산행을 함께하다 보니까 아 나는 아직 애기고 젊구나 싶더라구요. 그냥 산으로 뭉쳤는데 산악부 들어온 김에 열심히 활동하고 부원들과 즐거운 시간 보내자! 하고 편하게 내려놨습니다.


전날 저녁에 커피를 좀 진하게 마셨더니 잠을 설쳐서 많이 피곤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잖았으면 동방에서 신나게 기타라도 한 곡 쳤을텐데 졸려서 도저히 텐션이 올라오지 않더라구요. 그나마 깨어있을 수 있었던 건 정윤 – 지원 콤비가 옆에서 신나게 수다를 떨어준 덕분입니다. 두시 탈출 컬투쇼인줄. 마침 영인이가 경희대로 야구하러 간다길래 바람도 쐴 겸하고 나와서 집으로 직행했습니다. 방에다 침낭 펴놓고 그대로 기절했습니다. 다음 날에 보니 종아리에 알이 제대로 배겼더라구요. 아침에 아버지랑 찜질방에 가서 땀 쭉 빼고 오니까 몸이 좀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자신을 자연의 결에 맞춰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진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자각에 문득문득 설레이는데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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